중·고교입시

수·과학 영재 과학고 학생에게 반드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입력 : 2018-10-23 10:03:59 김효정 기자

최정곤 부산과학고 교사가 말하는 공부… ‘공부는 마음의 숲을 풍성하게 가꾸는 것’

 




동아일보 DB.





얼마 전에 학생들의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끝났다.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선생님들은 추천서를 쓴다고 모두 바빴다. 나도 지난 10여 년을 추천서를 쓴다고 자기소개서를 많이 읽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한 것이 학생들의 ‘꿈’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학생들의 글에서 나타난 그들의 꿈은 의사가 간혹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꿈은 ‘직업’이다.

 

 

문제는 ‘직업이 꿈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들이 자기소개서에 쓴 꿈은 비전을 얘기하는 것이다. 비전은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모습이다. 그래서 그것은 삶의 이정표이자 방향타가 된다. 비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은 그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단계적 목표이거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수단이 비전 혹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학영재학생들이 대다수 이런 직업을 목표로 생각하는 원인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들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이 과학특성화대학이거나 과학과 관련된 학과라는 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곳에서 요구하는 비전이 과학자라고 지레 짐작했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비전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고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 부족으로 생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하는 공부는 주로 수학‧과학이며, 독서도 대부분이 수학‧과학 분야이다. 자연과학관련 독서를 했다고 해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편향된 독서를 함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부족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전에 내가 근무했던 곳의 국어선생님 한 분이 과학고 학생들이 일반계고 학생보다 가르치기 훨씬 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유가 과학고 학생들의 국어실력 문제라는 말씀에 물리를 전공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아서 민망스럽기도 했다. 과학영재학생들 중에는 인문학을 대학입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 판단을 하거나 인문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입시에서 이 과목들의 성적을 크게 반영 하지 않는다는 것과 당장 무엇을 탐구하거나 해결하는 데 쓸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필요하고, 쓸 수 있는 것을 공부하면 효율은 좋을지 몰라도 시각이 좁아지고 생각이 편협해진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는 세상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도 어려워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본인의 가치관과 연결되어있다. 문제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는가하는 것이다. 가치관은 당장 이용하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인문학은 가치관을 기를 수 있는 보물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목이 쓸모없을까? 장자는 <소요유>편에서 쓸모없다고 하는 표주박을 어떻게 쓸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당장 쓸 수 있는 것만의 쓸모가 아니라 관점을 바꿔보면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의 쓸모가 바로 보인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숲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한 종류의 나무만 심어져 있는 숲은 풍성할 수 없고, 태풍이나 병충해 같은 재난이 닥치면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 숲은 서로 도와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어려움을 만나도 굳건하게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한쪽으로 치우친 공부는 마음에 한 종류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만난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세심한 관찰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이면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이것이 수학‧과학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등의 공부를 함께 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꾸어진 각각의 나무는 새로운 눈으로 작용하게 된다. 어느 순간 뉴턴의 눈으로 보았다가 때로는 괴테, 베토벤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굳건히 살아 낼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고의 비전은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인재의 양성’과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의 산실’이고자 한다. 이런 인재는 눈앞에 있는 성취 혹은 성급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는 유명한 대학출신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연구기관도 아닌 중소기업에 근무하면서 모두가 안 된다고 생각한 청색 LED(발광다이오드)를 개발했다. 이들이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나아간 결과였다.

 

과학영재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잠재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이 다양한 분야의 학습을 바탕으로 올바른 비전을 세우고,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 잠재능력 신장을 극대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 우리의 염원인 노벨상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길 기대해 본다.

 

 

▶최정곤 부산과학고 교사

 

 

 


▶에듀동아 김효정 기자 hj_kim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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